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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는 세상
와이프

입장차이

by 김대머리 2016. 11. 1.

 

3년 열애끝에 와이프와 결혼했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와이프는 시아버지를 한번도 뵌적이없고 그저 사진으로밖에 볼기회가없

었다. 시어머니는 시골에서 홀로 살고계시는데 결혼 6개월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그 즈음에 집안 상견래를 한게 다였다.

이게 우리의 결혼 내막이다. 내막이라야 별것도 없다. 대학교에서 졸업무렵 만난후 서로 마음에 끌려 사랑을 하게되고 그 사랑이 변함

이 없어서 결혼을 하게된 아주 이상적인 부부라고 할수있겟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님과 평생을 사셨고 시골생활이란

게 도시에서 보듯 낭만적이고 넉넉하며 풍요롭게 보일지몰라도 봄 여름 뙤약볕에 혹은 가을 겨울 찬바람에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나

마 다행인게 자식이라곤 나 하나 무녀독남이라 두분이 시골 벌이로 교육을 시키는데 지장이 없을정도 였던것같다. 신혼생활의 깨가 쏟

아진다는 시기도 잠시뿐 아이가 생기니 온통 그 아이를 중심으로 부부가 움직였다. 와이프는 직장을 쉬기로하고 다행이 좋은 직장이라

휴직기간이 보장되어 아이 육아에 전념할수있어 좋았다. 퇴근후 다른곳에 들르지않고 아이의 재롱이나 웃는 얼굴을 보면 얼마나 기분

이 좋던지 집앞 장난감 가게에서 아직 만질수도없는 큰 인형을 하나 하나 사가는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아이의 돌잔치를 마치고 두달

도 안되어 그 돌잔치에 참석하였던 부장으로부터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퇴사할것을 요구받고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두게되었다.

와이프는 이런 사실을 알고 어쩔수없으며 더 좋은 직장을 잡으면 된다고 격려와 용기를 주었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가 집에서 쉬고있기에 아이를 볼수가있어서 와이프는 직장에 복직신청을 하고 복귀하였다. 어린 아이를 본다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며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것을 누구나 알고있고 나역시 그정도는 알고있었지만 직접 내가 그 당사자로 아이 뒷치닥거리

내지는 똥 오줌 기저귀 우유 분유 병원부터 예방접종 따위를 하다보니 이건 고역도 산 고역이아니였다. 하루종일 온통 모든 신경이

아이에게만 집중되어있고 아이가 스스로 졸려 잠을 자는 한두시간의 짬이 골든 타임이고 그때나 허리좀 펴든지 맘편하게 아이옆에서

잠도 잘수있었다. 부모이고 자기 피와 살이 섞인 자식이라는 연결고리가 아니면 죽어도 하지못할 일이었다. 물론 돈이라는 매개체가

결되니까 기꺼이 한 사람도 있을거고 정말로 아이를 사랑해서 한 사람도있을거다.

이런 어려운 육아일을 나역시 일을 해야하고 이력서를 내는 회사에서 면접을위해 방문하라는 전화를 받게될때에는 그 날짜에 가야하

므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불러 좀 봐달라고 부탁할수밖에없었다. 와이프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기꺼이 시어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봐

주는을 찬성하였다. 어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취업될때까지만이라도 아이를 봐달라고하자 어머니 역시 기꺼이 손녀딸을 봐주

시겟다고 하셨다. 그무렵 처가댁에 와이프보다 두살 아래인 처제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취업하고싶다며 우리집에서 함깨 있으면 어떻

냐는 와이프의 조심스런 부탁이있어 나역시 기꺼이 찬성했다. 25평 아파트에 방세개라 하나는 우리방 하나는 어머니방 하나는 처제

방으로 쓰기로 와이프와 의견일치를 보았다. 어차피 시어머니는 아이가 어느정도 크면 시골로 가신다고하고 그땐 놀이방에 맞기면

니 와이프도 좋아햇고 처제는 취업 할때까지만 잠시 머무르고 취업하면 방을구해 나간다고하니 내가 좋았다.

사는것이 간단한것만은 아니다. 생각대로 결코 되지않는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행히 금방 새로운 직장을 잡아서 아무리 와이프와 내가

사이가 좋아도 또다른 변수가 그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는 다큰 처녀가 방하나를 우두커니 찾이해서

밥이고 반찬이고 처 먹는꼴이 사나웁거니와 당신 돈으로 아들이나 며느리를 위해 김치를 담고 밥을 해놓으면 처제란 년이 저녁 늦게

싸돌아 다니고 들어와서 달그락거리며 처먹는데 그렇게 미울수가없다. 어머니와 와이프는 서로 좋은감정이었고 존중해주는편이었다.

좋은감정이나 존중은 고부간엔 서로 간섭을 안하고 이래저래 기분 나쁘지않게 한다않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끔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와이프에게 어머니가 처제를 언급하며 아들내외를 위해 만들어놓은 김치찌개라든지 낙지볶음같은것을 먹어버리고 먹어

버린것도 모자라 설겆이도 안하고 씽크대에 덩그러니 놔두고 방으로 쑥 들어가버리니 그런 경우가 어디있노라며 불평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집안 기류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골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갖은 고생다하며 하루라도 편히 쉬지못하고

평생 밭에서 일만하셨던 어머니 눈에 처제의 행동은 가관이자 저런 몰염치도 없었을것이다.

처음엔 와이프도 처제를 나무라고 조심할것을 요구했으나 시어머니의 불평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이젠 듣는체 마는체도 시늉

도 하지않고 무시했다. 와이프가 보기에는 처제가 단순히 배가 고파 먹는것이고 혹여 설겆이를 안하더라도 그대로 두면 와이프가 할것

인데 어머니는 아이나 잘 봐주면되지 무슨 불평이 그리 많냐는것같과 더구나 쌀이고 반찬은 다 자기돈으로 사는데 자기돈으로 산

식을 자기 동생이 먹는데 머가 문제냐는것이다. 그런 와이프의 시어머니에대한 행동이나 말에 나 역시 자식으로써 상당히 기분이 나

빠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저런 소리를 하는것은 일리있는 소리이고 저런 소리를 너에게 하면 그냥 "네네" 하면서 "동생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고 조심하게 시킬께요" 하면 될일을 조목조목 따지듯 대꾸하면 안된다고 말하자 와이프가 내동생이 먹으면 멀 얼마나 먹고

어머니에게 멀 얼마나 서운하게해서 먹는것 가지고 저러시는지 이해를 못하겟다고 큰소리쳤다. 참 곤혹스러웠지만 달리 할말이없고

오히려 내가 어머니방에 조용히 찾아가서 처제가 멀 먹든 말든 어머니는 신경쓰지마시고 취직하면 금방 나갈거니 관심도 주지말라고

부탁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처제가 괴로운듯 어느날 나에게와서 자기는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없고 형부와 언니가 아침식사후 일찍

출근하면 먹다남은 그 반찬에 간단하게 밥한공기에 계란 후라이정도만 먹고 자기도 밖으로 나간다고했다. 여기 저기 직장을 알아보든

가 면접을하고 혹은 서울에 시집와서 살고있거나 취업해서 살고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오면 어떨땐 집에서 한끼도 안먹을때도

있고 고작해야 어쩌다 저녁을 안먹고와서 배고픔에 공교롭게도 사돈어르신이 만들어놓은 음식을 먹게된적이있었는데 그건 고작 한두

번정도였고 다시는 그러지않겟다고햇다. 물론 설겆이도 너무 피곤해서 언니가 하겟거니하고 들어가 쉬었다고 죄송하다고했다. 나로썬

이런 처제의 하소연에 달리 할말이없고 그저 노인네들 마인드가 원래 다들 그런것이고 어떤 시부모도 자기 아들집에 사돈댁 식구들이

얹혀저있으면 싫어할것이니 처제가 젊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취업해서 독립할때까지 참아주길 바란다는 말을했을뿐이다. 어느날 어

머니가 아이를 보다가 마침 처제도 밖에 안나가고 쉬고있기에 잠시 미장원에가서 머리 손질좀 하고올테니 그동안 아이좀 봐달라고 부

탁한후 미장원에 가셨다. 일은 이때 터지고야 말았다. 처제가 아이를 소파에 뉘어놓고 TV를 보고있는데 초인종이 울려 인터폰을 보는

그 사이에 아이가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무슨 종교 교인들의 초인종소리로 무시하고 아이를 봐야했었다. 처제는 아이 이마가 퍼렇

게 멍이들어 부어오르고 자지러지게 울자 당황하고 어찌할바를 모르다 언니에게 전화했고 언니는 뒤로 안떨어지고 이마가 다쳤으면

괜찮으니 걱정말라며 침착하게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났으면 문제겟는가. 머리손질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처제를 크게 나무랐다. 도대체 조그만 아이하나 보는것도 못하고 다치게 하였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당신이 해야

할일인데 아이를 맡겨서 아이가 다쳤으니 당신에게도 큰 책임이있거니와 며느리와아들에게 먼 소리를 들을까 걱정하셨다. 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수있는것은 어떻해서든지 처제에게 뒤집어 씌우는것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나에게 전화해서 상황설명

을 하며 처제를 욕했고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이미 알고있고 괜찮다고 했음에동생의 멍청함에 한탄을 하셨다. 그날 저녁은 안봐도

비디오고 상황이 그려지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으로 와이프와 처제가 크게 다투고있고 처제는 짐을 싸

고 당장에 나갈기세로 두눈에 핏발이 서려있었다. 그러니까 이렇다. 어서빨리 취업하든가 결혼하든가 스스로 해결해서 이 더러운꼴 왜

보면서 사는것에대해 처제를 나무랐고 처제 역시 서럽고 자기가 그러고싶어 그러겟냐며 지금 나가겟다고한후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

다. 이 상황에 크게 당황한것은 어머니와 나였다. 어머니는 괜히 쓸대없는 소리를해서 더 큰 일일 벌어진게 아닌가하는 걱정에 조그

만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버렸고 나역시 처제를 잡을수도 보낼수도없거니와 와이프를 말릴수도없었다. 말려봐야 더 화가나서 이젠

봇물터지듯 나와 시어머니에게 화살이 돌아갈게 뻔하기때문이기도했다.

동생이 밖으로 나가버리자 잠시 당황한듯하더니 급히 동생에게 전화를 하고선 지금 돌아오지않을려면 다시는 언니 볼생각도 하지말

라고 큰소리쳤다. 내가 충격받은것은 처제의 대답이었다. 얼마나 큰소리로 악에받쳐 큰소리치는지 "그 추한 늙은이 보기싫어서라도

안들어가. 집으로 갈거다" 어머니가 추한 늙은이로 처제에게 보였는 모양이다. 이내 전화를 끊어버리자 와이프도 더이상 말을 할수없

었다. 와이프가 한숨쉬면서 목이 타는지 정수기로 가서 물한컵을 마시자 와이프 핸드폰 벨이 울렸다.

이젠 장모님 목소리가 들리는데 와이프에게 그깟 밥한공기  반찬이 머가 아까워서 그렇게 괄시를 하며 좀만 있으면 알아서 나갈텐데

꼴을 못보냐며 어머니를 무식한 여자라고 큰소리쳤다.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있는 나로썬 고역이 아닐수없었다. 하지만

와이프 핸드폰을 빼앗아 대채 무슨소리를 하느냐고 따지는것도 우스운일이거니와 와이프와 또다른 큰 싸움이 날것같아 모른체할수

밖에없었다. 하긴 어머니도 매사 직설적이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시는 편이라 틀린말은 아니었다.

그후로 와이프는 매사 자기 스스로 자기가 먹을 밥과 반찬을 꺼낸후 먹고서 출근하고 퇴근하였다. 시어머니와 나에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질않았다. 더 고통스러운것은 대화 자체를 하지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때되면 시장가서 필요한 음식을 사다놓고 아이의 분유와 

이유식 기저귀를 사다놓을뿐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도 이 상황을 해결할수있는것은 처제가 나갔기때문에 어머니도 시골로 보내고 아이

를 놀이방에 맡기는것이 피차간 좋겟다고 생각되었다. 퇴근후 먼저 와있는 와이프에게 이 상황을 벗어나기위해 그렇게 하는것이 어떻

겟는가 의사를 타진하니 그동안 말도없이 필요한 말만 하던 와이프가 그렇게 했으면 좋겟다고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고맙다고 말한후 여지껏 아이를 봐준 고마움의 표시로 어느 정도

현금을 드리고 좀더 많이 통장에 입금해드렸다. 어머니 역시 아이를 돌보시느라 힘드셨고 아무래도 맘 편한 고향이 좋으신지 기꺼이

그러겟노라시며 내일 당장 이 불편한 집을떠나 스스로 내려가시겟다고하셨다.

이렇게 다시 집안은 평온해졌다. 아침에 아이를 근처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한후 일을 하고 누구든 먼저 퇴근한 사람이 아이를 데려오

는 패턴이지만 좋았다. 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을 보는것은 상당한 재미이고 행복이라 와이프와 난 더이상 바랄것이없을즈음 처제가 결

혼을한다는 연락이 와이프에게 왔다. 오랫동안 시집을 못가서 전전긍긍 싱글로 늙어버릴것같던 처제도 옛말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격

언이 사실이듯 결혼을 한다니 기뻣다. 하지만 동서될 사람에대해 들었을땐 상당히 놀랬던것이 어린아이가 하나있는 상처남이고 처제

는 동서될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기꺼이 그 어린아이를 키워주기로 약속하고 결혼하기로 했다는것이었다.

남녀관계는 당사자 두사람들 일이고 어느 누구도 그 사랑을 막지를 못하기에 아무리 이혼남과의 결혼을 처가댁에서 반대해도 한번 결

심한 이상 어쩔수없는 모양이다. 와이프 역시 처제 남편이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어쩔수없는 노릇이라 언니로써 최선을 다하면 그걸

로 족하며 두사람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마인드여서 우리는 처제 결혼식에 기쁜마음으로 참석했다. 

사는게 다 똑같은 모양이다. 처제도 아이를 임신하자 그동안 기꺼이 돌봐왔던 남편의 의붓아들이 점점 미워지고 보기조차도 싫어지는

것이었다. 분명 박힌 돌을 빼내고 들어온 돌은 처제였건만 남편의 아들이 들어온 돌이 되는것이고 처제가 박힌돌이 되는입장으로 변하

그 의붓아들이 눈엣가시처럼 보기싫어 매사 꼴도 보기싫어했다. 이런 사정을 모를리없는 동서는 아들을 어머니댁에서 키워볼려햇

지만 어머니가 당뇨로 고생하시고 아버지마저 늙고 힘들어하셔서 처제를 잘 다독거리고 살아볼려고 노력을 많이했다.무엇보다도 어린

아들이 받을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맘이 편치가 않다. 처제가 아들을 순산하자 장모님이 처제에게 가서 산후조리를 해주기

셨다.

바로 여기서부터 일은 시작된다. 그전은 처제와 동서가 그저 작은 다툼으로 그때만 지나면 다시 원상회복 되어졌지만

장모님이 처제 산후조리를 위해 오셔서 동서와 함깨 살고부터 트러블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것이다. 원인은 바로 전 아내에게서

아들이었는데 장모나 처제가 극도로 그 아이를 싫어해서 동서가 없을땐 식은밥을 주거나 라면을 끓여주고 어떨땐 집안 청소도

시킬때도 있으며 심지어 장모님은 그 아이를 친할머니 집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면 당연 흙이나 먼지를

옷에 묻히고 오는데 그게 또 싫은지 야단을 치고 심하게 나무라곤했다. 당연히 동서 어머니가 혼자 그 먼거리를 새엄마나 할머니가 보

냈다며  쓸쓸히 오는 아이의 사정을 동서에게 말하며 어떻게 그럴수있냐며 두 여자에게 심한 욕을했다. 이걸 아는 동서는 처제와

장모님에게 이건 아닌것같다며 아무리 의붓자식이어도 기본적인것은 지켜달라고 사정도 해보고 다투기도 하였다. 이건 동서가 스스

로 나에게 전화를해서 하소연을 하는것이다.

같은 남자로써 동서가 측은하고 안되어 보였다. 또하나 옛날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처제가 우리집에서 기거할때 우리 어머니

했던것보다 더한 괄시와 면박을 어리디 어린 아이에게 아무 죄책감도 없이 하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추한 늙은이나 무식한 여자로

들어버렸던 그 두모녀의 양심이 가증스러웠다. 당장에 와이프 면전에 동서의 애로사항이나 고충을 말해주고 악독한 여편네나 일자

식 여자라고 비웃어보면 십년묵은 체중이 싹 가라앉겟지만 그럴수없는 노릇인게 안타깝다. 와이프 역시 이 사실을 알고있다. 당연히

알고있을거다. 알고있음에도 절대로 나에게 그런 속사정을 말하지않았다. 당연하겟지. 그건 또 그들의 입장이라는것이 있을테니까.

이래 저래 남자들만 고통스러운 세상인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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